기자회견문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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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용산나눔의집 작성일 22-11-04 14:39 조회 706 댓글 0본문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당신은 오늘 하루도 안녕하신가요?"
- 이태원 10.29. 참사에 대한 종교계(성공회)의 입장 -
여러분은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만원 전철이나 버스 앞에서 잠시 주춤거릴 때마다 깊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앞에서 우리는 주저앉았습니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뉴스 속보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고, 터져 나오는 울음과 ‘어떻게’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뉴스 자막으로 처리된 희생자와 피해자의 숫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커지는 걸 보며 참담한 마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코 숫자로 처리될 수 없는 저마다의 삶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 축제에 다녀갔거나, 그곳에서 살아남고 도왔던 사람들의 충격과 고통 또한 너무 크고 깊습니다.
[ 참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시간, 국가와 사회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
우리는 매해 비슷한 장소에서 진행된 대규모 축제인데, '왜 중앙지방 정부의 행정과 경찰력은 이 참사를 막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듯이,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10월 29일, 이태원 한 골목에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잠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각자도생의 시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밀어 넣었습니다. 분명 다 갖춰져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과 엉성한 프로세스들로 인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간절히 필요했던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 신고나 구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행정과 경찰력은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윗선들과 정부여당은 일선에 있는 이들이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상황을 만들어 놓고, 지금 모르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인들이 자주 하는 인사말 중에 서로의 안녕을 비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샬롬, 살람, 평화. 모두 신과 공동체가 우리를 평안하게 지켜주기를 소망하는 인사입니다. 이런 종교나 사회에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안전과 평등에 대한 믿음과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이런 믿음과 감각을 주지 못해서, 안팎으로 비판 받기도 합니다. 그 종교나 사회 안에 있다면 좀 더 안전하다는 믿음과 감각, 제대로 된 신앙과 사회 시스템 가운데에서 평등하다는 믿음과 감각. 그런데 수많은 징후를 거쳐 대형 참사를 맞이한 자리에서, 국가와 사회에 그런 믿음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신당했습니다.
[ 종교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먼저 이태원에서 열린 할로윈 축제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희생자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깊은 애도와 진상규명, 그리고 연대는 하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사회적 통제 이후 잠시 열린 축제의 자리에서도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제대로 작동하고 당연히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 대해, 섣부른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가볍게 진단하고 무책임하게 해석하며 비난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태원과 할로윈 축제 그리고 가장무도회는 엄숙주의를 강요하는 평균적인 사회와 문화, 윤리 기준에서 아주 잠시 벗어나, ‘정상, 표준, 평균’이란 무엇인지 되묻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희생당한 분들 가운데, 지난 정부도 반복해서 ‘나중에’를 외치며 배제시킨 성소수자와 미등록 이주민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참사의 원인과 과정이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듯이,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자리와 이야기도 간단명료하지 않다는 걸 알려줍니다. 문제 진단과 해결책도 간단명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향한 우리의 비판과 변화를 위한 요구도 특정한 정부와 권력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희생자와 피해자가 겪는 복합적인 문제 앞에서 유체이탈화법을 일삼는 이들이나 나중에를 외치는 이들은 다른 듯 같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 우리들도 함께 기도하며 연대하겠습니다. 또한 기억해 주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이제 우리 종교인들은 이번 참사로 인해 생사를 달리한 분들, 다친 가운데 생명의 끈을 붙들고 있는 분들, 그곳에 있었거나 다녀와 마음을 짓누르는 슬픔에 고통 받는 분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썼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분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신과 우리 공동체가 주는 위로와 치유의 손길이 함께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깊은 애도로 희생자를 비롯해 고통 받는 모든 분들과 연대하며, 복합적인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져 막을 수 있었던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함께 하겠습니다. 정부가 너무 늦지 않게 신중하고 정확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책임지는 조치를 마무리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희생자와 피해자, 그 참사의 자리에 있던 분들, 이번 사회적 참사로 인해 상처 받고 슬퍼하며 고통 받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의 기도와 용기, 지혜가 되어, 이 깊은 아픔을 함께 지나갈 것입니다. 그 아프고 힘겨운 여정에 저희 종교인들도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도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남 탓만 하며 회피하기 바쁜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녕한 하루를 빕니다. 샬롬, 살람, 평화.
-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회장 & 나눔의집협의회 정책위원장, 민김 종훈(자캐오) 신부.